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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시작은 후추 때문이었다 ?

by 포코차 2024. 6. 23.

안녕하세요. 오늘은 대항해시대가 어떻게 촉발이 되었고 무엇 때문에 대항해시대가 열리게 되었는지 글을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15세기와 16세기에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며 세계사에 큰 영향을 준 대항해시대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시작합니다.

대항해시대 시작은 후추 때문이었다?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

포르투갈은 13세기 중반(711~1249년)까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던 작은 나라라는 것과 동시에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의 선구자로, 15세기와 16세기 동안 유럽의 탐험과 무역의 중심에 있었으며 이 시기에 포르투갈은 중요한 해상 무역로를 개척하고,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며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는 여러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으며, 그 결과는 매우 광범위하고 영향력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은 후추 때문이었다 ?

당시 15세기 유럽에서 향신료는 매우 귀중한 상품이었으며, 특히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는 후추, 계피, 정향, 그리고 육두구 등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후추는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최고의 사치품이었으며 인도에서 생산된 후추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럽의 베네치아를 거쳐 포르투갈까지 가게 되면 가격이 100배 이상 폭등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1453년)시키고, 동서를 연결하는 무역로를 장악하게 되면서 기존의 육상 무역로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있게 됨으로 후추의 가격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상인들은 새로운 해상 무역로를 찾을 필요가 있게 되었죠.

'항해왕' 엔히크 항해왕자의 등장

엔히크 항해왕자(Prince Henry the Navigator):

포르투갈의 탐험을 주도한 인물로, 엔히크 항해왕자는 항해 학교를 설립하고, 항해 기술의 발전을 지원하며, 많은 탐험을 후원했습니다. 그는 특히 아프리카 서해안을 탐험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 1419년

항해사, 지도 제작자, 천문학자, 조선업자 등 항해 전문가들을 모아 보다 먼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항해 기술 연구 시작.

  • 첫 번째 관문

엔히크 항해왕자의 첫 번째 목표는 보자도르곶이라는 지역을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은 편서풍이 무역풍으로 변하는 곳으로 당시에 이곳으로 갔다가 살아 돌아오는 사람들이 없었을 정도로 아주 무시무시한 곳이었기에 사람들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바다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보자도르곶을 항해하기 위해 엔히크 항해왕자는 13년(1420~1432년)동안 무려 14차례나 도전하며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434년 15번 째 도전에서 보자도르곶 항해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엔히크 항해왕자가 보자도르곶 항해에 성공하기 위해 걸린 기간은 15년이었습니다.

  • 1460년

엔히크 항해왕자의 사망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등장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s):

1488년에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발견함으로써 인도양으로 가는 항로를 열었습니다.

 

대항해시대를 열기 위해 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한 뒤 약 70년이 지난 1488년에 바로톨로뮤 디아스라는 사람이 희망곶(희망봉)을 발견하게 됩니다.

  • 경쟁자의 등장

1492년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인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게 되면서 포르투갈은 인도 항로 개척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며 더욱 항로 개척에 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밝혀진 바 인도에 도착했다는 콜럼버스가 밟았던 땅은 사실 콜럼버스의 착각으로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였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바스코 다 가마의 등장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98년에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로 항해하여, 유럽과 인도를 직접 연결하는 해상 무역로를 개척했습니다. 이는 향신료 무역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엔히크 왕자가 항해 기술을 연구하며 미지의 바다에 도전한 지 80여 년 만에, 포르투갈은 인도에 도착하게 되었고 이제 교역만 하면 되는 상황 속 당시 바스코 다 가마가 가져간 물품들은 너무나 형편없어서 인도에서 제대로 된 교역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량의 향신료와 약간의 보석을 구해서 포르투갈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원정 비용의 수십 배 이상의 수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

인도 향로 개척 이후 향신료 무역으로 큰 성공을 거둔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를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포르투갈을 보며 다른 유럽 국가들도 앞다투어 뛰어드는 대항해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탐험과 무역은 세계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포르투갈의 선구적인 탐험가들과 그들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는 세계 경제, 문화, 그리고 정치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현대 세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이상 포코차의 세상만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